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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가 안사의 난 이후 혼란을 겪다 주온(주전충)에게 망한 이후, 화북에는 5대(후량, 후당, 후진, 후한, 후주)가 들어서고 강남에는 9국(오, 남당, 오월, 초, 민, 전촉, 후촉, 남한, 형남) 그리고 태원에는 북한이 들어섭니다. 역사적으로 이 나라들을 합쳐서 10국이라고 하는데, 사실 10국에 포함되지 않은 연이나 기같은 은 나라들도 잠시나마 존재하기는 했습니다. 거기다가 후진이 거란이 세운 요를 불러들임으로써 연운 16주 역시 요가 진출하지요. 그런 혼란 속에서 후주의 세종이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고, 결국 송의 조광윤이 선남후북(남쪽을 먼저 평정하고 북쪽을 나중에 평정한다)의 정책으로 태조가 오월을 끝으로 강남을 통일하고, 송 태종이 북한의 태원을 점령함으로써 오대십국의 시기를 종식시킵니다. 그러나 이제 문제는 연운 16주를 차지하고 있는 요였습니다. 사실 연운 16주는 중국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는 작은 땅이지만, 그 땅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작지 않았습니다. 연운 16주는 장성 이남에 있었기 때문에, 송의 입장에서는 목 앞의 비수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사실 만리장성은 당시 중국 동쪽에만 있었습니다. 지금의 장성이 만들어진 때는 명 이후의 일이죠) 오랑캐가 그 땅을 차지하고 있다는데 격분한 송 태종은 대군을 이끌고 친정했지만, 초반에 약간의 승리를 거둔 뒤 유주까지 진군했으나 기구라는 곳에서 대패하여 화살에 맞고 후퇴합니다(후에 그 상처가 악화되어 죽습니다). 경기병 위주의 당과는 달리, 송은 보병 위주인데다가 문관 중심이었고, 화북 평원은 기병이 활동하기가 아주 좋은 땅이었기 때문이죠. 결국 1004년, 송과 요는 전연의 맹을 맺게 됩니다. 송 황제는 요 황제와 '형제'가 되었고, 송은 요에게 엄청난(비단 20만 필, 은 10만 냥)의 세폐를 줍니다. 반면 요나라는 약간의 기마나 안장 정도를 주어 보냈지요. 이 맹으로 인해 요가 멸망할 때가지 송-요간에는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으며, 요는 송이 보내준 세폐로 크게 성장합니다. 사실 요는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송은 요의 요구조건인 영토할양을 거부하고, 공주를 보내 달라는 요구 역시 거절합니다. 그 대신 보낸 것이 세폐지요. 송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가장 현명한 판단이었습니다. 영토는 군사적 위협을 더 추가할 것이고, 공주는 황실 체면의 문제이니까요(당시 송 황실의 입장에서, 입니다. 현대인의 판단으로는 공주를 보내는 것이 훨씬 낫지요. 대표적으로 공주를 보낸 나라는 당). 그리고 송의 경제력은 세폐 조금 보낸다고 흔들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 송은 주변국들에게 얕보이게 됩니다. 그 뒤에 일어난 이원호의 서하는 하서주랑(현재 감숙성)에서 일어나 송의 서방 무역로를 점거하고 독립국임을 칭합니다. 송은 막대한 군사를 보내 응징하려고 하지만 정치적 분쟁과 문약한 군사, 그리고 북방의 요 때문에 결국 서하에게도 세폐를 보냅니다(서하도 서방 무역품을 송에 수출하려면 화친이 필요했으니까요). 그러나 서하는 요와는 달리 계속 송을 공격했고, 송은 그때마다 세폐를 올려주어야 했습니다. 세폐가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송의 경제력이 쇠퇴하기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귀족들이 불법적으로 토지를 늘리고 자영농들이 사라지기 시작하자, 세금이 줄어들어 국가 예산이 급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죠. 이 상황을 개혁하려고 했던 인물이 왕안석입니다만, 사마광을 선두로하는 보수파에게 밀려 실패하고 맙니다. 이때부터 송은 멸망의 길을 걷기 시작하죠.
고려 역시 후삼국의 상황을 정리했을 때, 요가 사신을 보냅니다. 역사에는 낙타 50필을 보냈다고 했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낙타에 예물을 실어보낸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합니다. 진실이야 어쨋든, 태조 왕건은 단호히 발해를 멸망시킨 나라와는 화친을 맺지 못한다는, 명백히 친 발해적 발언을 하며 사신을 유배시키고 낙타를 풀과 물이 풍부한(!) 만부교 옆에 묶어놓습니다. 일종의 정치적 쇼를 한 것이지요. 다행이 요는 당장 쳐들어오지 않았습니다만(사이에 여진족이 있어서), 그 대신 여진 정벌을 시작합니다. 이 때 고려의 반응은 '무관심', 이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압록강 이남의 여진족을 정복하러 갔다가 대패했습니다. 이왕에 여진을 정복할 것이면 차라리 요와 관계를 계선하거나, 아니면 송과 동맹을 맺어 요를 견제해야 할텐데, 고려의 정책은 외교적으로 실패였습니다. 아니, 아예 불간섭 주의라고나 할까요? 덕분에 여진이라는 새로운 적을 만들게 됩니다. 그 사이 요는 내원성(의주)를 점령하고 성을 쌓았는데, 이것은 군사적으로 고려에게 엄청난 위협이 됩니다. 압록강이 의주에 이르면 강폭이 넓어지고 퇴적물이 쌓여 군데군데 하중도(河中島)을 이루는데, 이것은 요군이 압록강을 건너는 것을 수월하게 합니다. 그런 요를 막을 수 있는 곳이 의주입니다만, 요가 이곳을 점령하니 오히려 요의 전진기지가 되어버립니다. 문제는 고려는 이 일에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잘 못하면 나라가 망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고려는 어떠한 군사적 행동을 취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요의 동경(요양)유수 소손녕이 처들어오기 3개월 전, 여진족들이 요가 고려를 침공할 계획이 있다고 제보하지만 고려 조정은 오랑캐의 이간질이라고 무시합니다,(;;;) 결국 소손녕은 자칭 80만 대군(이라고 하지만 아마 기병 6만 이하)을 칭하면서 압록강을 건넙니다. 이에 고려는 부랴부랴 군대를 보냅니다. 그리고 귀주 근처의 봉산이라는 곳에서 마주친 두 나라의 전투에서 고려는 대패합니다. 그러자 안주까지 와있던 고려 성종은 당장 서경으로 되돌아가 의논을 하는데, 내용이 기가 막힙니다. 무조건 항복하자는 측과 자비령 이북을 떼어주자는 할지론자들만이 있었습니다. 싸우자는 의견은 아예 없었는데, 이것은 고려가 외세와 싸울 수 있는 주력군이 아예 없었기 때문입니다. 전혀 전쟁 준비가 안 된데다가 고려의 국가체제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죠.(일부 지역은 사신을 보내어 세금을 거둘 정도였음) 결국 조정은 할지론으로 강화를 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읍니다. 하지만 자바령에서 개경은 방해물도 없는 가까운 거리인데다가, 서경 역시 개경과 맞먹는 제2의 수도인데, 만약 넘겨준다면 고려는 남쪽으로 천도해야 될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2개의 수도를 내어준 다음에는 아마 정치적 혼란이나 내분으로 자멸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죠. 한편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소손녕은 귀주 근처에 눌러 앉아 항복하지 않으면 80만 대군으로 쓸어버리겠다는 협박만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에 이상함을 느낀 사람이 박살난 고려군을 이끌던 사람 중 한명인 서희였죠. 서희는 고려 이북의 여진과 전쟁을 하고 있어 보급선도 불안한 요가 80만 대군을 이끌고 귀주에 머물러 있다는 모순을 발견했습니다. 80만 대군이라면 진작 쳐들어와야 하는데, 전혀 그런 기미가 없기 때문이죠(당장 보급의 문제로 후퇴해야할 판에 말입니다). 그리고 여진과의 전쟁을 하고있는 지금, 요는 고려와의 전쟁에서 패배할 경우 당장 요-여진 전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도 고려했습니다. 그래서 군사적 손실을 입을 수 있는 전투 대신 협박만 계속 하고 있는 것이지요.아마 서희는 이런 이유로 요가 쳐들어온 까닥은 정복이 아니라 강화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서희는 다시 한번 요와 붙어보고 항복이든 강화든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거부당하고, 대세는 항복이라는 분위기가 강해집니다. 문제는 이런 조정의 분위기를 전혀 모르는 소손녕은 불안해져 군대를 이끌고 남하합니다. 다 보낸 것이 아니라, 일부만 안융진으로 보냈는데, 안융진에서 패합니다. 당시 안융진을 지키던 장수는 고려에 항복한 발해 세자 대광현의 아들 대도수와 유방이라는 장수(어쩌면 유금필 장군의 아들?)이었는데, 불시의 기습임에도 불고하고 성을 지켜냅니다. 그러나 고려 조정은 항복하자는 분위기가 강화하자는 분위기로 돌아섰을 뿐이었습니다. 고려는 서경의 쌀을 주민들에게 나누어주고, 그래도 남자 남은 쌀을 대동강에 버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어찌 쌀을 버릴 수 있느냐는 의견이 나와서 포기하고 서희를 강화사절로 보냅니다. 서희와 만난 소손녕은 서희에게 절하라고 요구하지만 서희는 신하가 신하와 만날 때에는 절할 수 없다고 합니다. 소손녕이 계속 요구하자 숙소로 돌아갔다가 소손녕이 다시 불러 회담을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소손녕과 서희가 고구려를 누가 계승했느냐를 놓고 논쟁하고, 다음에는 왜 고려는 이웃의 요를 나두고 바다 건너 송을 섬기느냐고 소손녕이 묻습니다. 이에 서희는 요와 고려 사이에는 여진이 있어서 왕래를 못한다고 하며, "만일 여진을 구축하고 위리의 옛땅을 회복하여 거기에 성과 보를 쌓고 길을 통하게 된다면 어찌 국교를 통하지 않겠는가,"라는 말을 합니다. 애시당초 요가 고려를 침략한 이유는 여진 정별 중에 고려가 여진과 연합하여 요에 대항할 것을 걱정해서 였습니다. 태조 왕건 이래 고려는 요와 적대적인 국가였으니까요. 서희는 소손녕에게 서로 여진을 공격하자는 제안을 한 것입니다. 소손녕은 '감격'해서 7일동안 잔치를 벌이고 예물을 주고 갑니다. 이후 고려는 강동 6주를 얻게 되는데, 이는 후에 고려-요 전쟁에서 엄청난 도움이 됩니다. 평안북도는 평안남도와 달리 지세가 험준한데, 서희는 이곳을 얻고 2년동안 수십개의 성을 쌓아 요와의 전쟁에 대비합니다. 아마 강동 6주를 얻지 못했더라면 고려-요 전쟁은 크게 달라졌을 것입니다.
이후 요는 계속 고려를 침략해서 한때 개경을 점령하고 다른 한번은 개경 근처까지 접근하지만, 결국은 모두 실패합니다. 그 후 요는 다시는 고려를 침공하지 못하죠. 송은 한때의 전쟁에서 패하고 개봉이 포위당했을 때 화친했지만, 고려는 지속적인 저항으로 스스로의 힘을 보여준 후 화친합니다. 약자와 맺은 협약과 강자와 맺은 협약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물론 국력으로 따지자면 송이 고려보다 강했습니다만은, 고려는 초기(...)만 제외하면은 결사적으로 버텨 외교적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그 결과가 요가 망할 때까지 이어진 고려와 요 사이의 평화였습니다. 외교는 결국 힘의 논리에 따라서 이루어 집니다. 송은 그 힘을 보여주지 못해서 결국 망했고, 고려는 그 힘을 보여주어 500년 사직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한중외교에서 저자세만 보이고 있는 외교관들도 알았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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